무로맨틱 안드로진으로 산다는 것

 어떤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제가 사랑 또는 사랑과 관련된 것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솔직히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필요성을 진지하게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사랑 혹은 그와 관련된 전형적인 이미지에 대한 정반대 또는 일종의 상반된 시각입니다.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나를 사랑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뚜렷한 정의(definition)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전혀 비참함도 아니고 외로움도 아닙니다. 지인들이 배우자가 없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저를 부러워하는 이유를 솔직히 몰랐는데, 한 친구가 그 이유를 조금 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가 없을 때 비참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솔직히 제가 부럽다고 솔직하게 말해줬어요. 

그리고 저는 어떤 의미에서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충족감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AFAB(Assigned Female At Birth) 아로마틱 안드로진이라는 것은 성인의 지성과 지식을 가지고 영원히 소년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아직 사춘기를 겪지 않았거나 마음속으로 사춘기 초입에 있는 합창단 소년의 나이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세상과 육체는 영원한 소년기의 마음으로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시들어갈 것입니다. 저는 바이너리 여성도 남성도 아니며 남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은 이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고, 저는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아직은 강하지 않습니다. 제 성 정체성은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타고난 겁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가장 멋진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의(Justice)에 대하여

 저는 정의로운 생각이 주로 사유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정의를 본능적이고 자비로운 마음의 특성이자 한 사회의 집단적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애착과 사랑,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무의식적 사고방식의 문제입니다.

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될까요? 범죄자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고,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서 수십만 명의 군인이 수만 명을 죽이는데도 왜 개인은 다른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될까요? 일반적으로 특정 맥락 없이 무죄로 추정되는 개인은 그 사람이 위험한 사람이거나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무고한 정상성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정의라는 용어는 일반화된 대상에 대한 애정으로 개념화되었습니다. 일반화된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서 파생된 매우 추상적인 용어입니다. 그리고 그 이해는 주관적인 감정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그 정서의 일부는 사회적 동조에 의해 형성되기도 하지만, 다른 일부는 고유하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될 수 있습니다.

추상적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각각의 표상으로 구성된 집합적 이미지의 총합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사과라는 관념을 알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실제 사과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상으로만 만들어진 이미지까지 포함하여 충분한 양의 심상을 가지고 있다면 사과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과의 정신적 표상입니다. 따라서 사과라는 단어는 상징으로서 그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사과에 대한 표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과에 대한 고유한 느낌과 정의(definition)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상에 대한 정서가 정의(justice)의 개념을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종교나 정치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들을 존중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는 그런 감정이 바퀴벌레를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표상과 정서는 서로 구별 가능한 별개의 요소입니다. 따라서 정의(justice)는 애착에 크게 의존됩니다.

<달리, 끝없는 수수께끼>전을 본 감상평

모든 형태로 제공되는 것들을 예술이라 칭할 수는 있겠지만, 보통 고전적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하러 간다.' 한다면 전시회에 걸려있는 네모난 액자에 걸린 그림 작품들과 설치미술들을 감상하고 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보통 넓은 공간 전체를 뒤덮어 관객에게 마치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한 이런 형태의 전시는 나에게 처음이었다. 살바도르 달리를 좋아해서 찾아간 전시회였는데, 달리의 작품보다 더 인상적으로 와닿았던 부분은 빛의 시어터 공간 자체의 오디오비주얼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은 그 사람이 있는 공간 자체가 변하면 그 사람 생각과 가치관 또한 변하게 된다'고 믿는다.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에 따라서 자기 자신 또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어떤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러 미술관에 갈 때, 작가의 그림을 보러 가는 것도 있지만, 그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들어가서 감상한다는 행위 자체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도 있을 것이고, 무의식적으로 이와 같은 경험이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감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빛의 시어터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내가 감상자가 되어 미술관에 입장하여 그림을 본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작품의 세상 들어가서 관람을 하는 여행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따라서 전자와 후자는 작품과 상호작용하는 관계 자체를 다르게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품과 관객과의 이러한 색다른 관계 설정과 살바도르 달리 자체의 초현실주의풍의 그림 자체와 궁합도 잘 맞았다. 내가 실제로 이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라에 여행을 하는 기분이 아니라, 작가 달리의 상상 들어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체험해 보고 왔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그것도 정적인 공간이 아닌 동적인 공간이다. 아무래도 전시라는 형식과 취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천천히 움직였다면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내 감정을 더 세심하게 포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있었다. 빨리 변화하는 시청각적 흐름에서 나 역시 사진 찍고 영상으로 남기고 싶어서 놓쳤던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빠르게 변화하는 영상 자체가 내가 그 속에 있다는 현실감보다는 새롭고 신기한 것을 봄으로써 느껴지는 몰입감을 주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왔었는지 되돌아본다면,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땅과 하늘이 움직이는 곳에서 느껴졌던 은근한 불안감이 들었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세상으로부터 느껴지는 실제 세상에 대한 덧없음, 달리 특유의 뚜렷한 색감에서 느껴졌던 활기와 생동감, 그리고 이런 독창적이고 풍부한 예술을 보고 있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경외감과 부유함을 느낄 수 있었던 전시였다.





독후감: Our Global Lingua Franca: An Educator’s Guide to Spreading English Where EFL Doesn’t Work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영어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영어는 단지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 90퍼센트의 정보는 영어로 되어있다. 영어를 공부하면 그 콘텐츠가 게시 되자마자 즉시 소비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너희들은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고, 그만큼 뒤처질 수밖에 없고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영화 <파이널 판타지> 최신판을 보여주신 후 하신 말씀이었는데, 그때 제일 그래픽이 좋았던 작품 중 하나였고, 그 영화의 그래픽에 홀려있던 상태였다. 나는 그때 그 선생님께서 다른 영어 수업보다 더 깨어있는 선생님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그 말이 정말 와닿았었다. 어려서 정확히는 설명할 수 없었겠지만, '내가 지금 경험한 것들보다 더 새롭고 대단한 것들이 인터넷에는 정말로 많구나, 그리고 그것들 대다수가 영어로 적혀있구나.' 정도의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서 살면서 학교 수업 시간에 영어를 배울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빨리 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한국어가 언어학적으로 영어와 상당히 거리가 먼 언어라서 배우기가 꽤 어려운 것도 있고, 단일민족 국가라서 주변에 한국인 친구밖에 없어서 영어를 쓸 환경 자체가 좀 안 받쳐주었던 것도 있었다. 이것 뿐만 아니라, 학교 수업 자체도 이 단점들을 만회해 줄 효과적인 수업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에서의 거의 모든 영어 수업은 주입식, 문제풀이식 교육이었다. 선생님이 앞에서 문법을 설명해 주시고, 학생들은 그것을 주입식으로 교육받으며 어떤 것이 정답일지 사지선다로 답하는 수업이 주류였다. 내 인생 동안 학교에서 학원에서 받았던 수업 거의 모든 게 그랬고, 풀어야 하는 문제 자체도 한국어에서 직역을 한 것인지 이상한 영어도 많았다(특히 수능 영어).

<Our Global Lingua Franca: An Educator’s Guide to Spreading English Where EFL Doesn’t Work>은 현재 영어 교육의 이러한 비효율을 지적하며 어떤 방법이 더 학생 입장에서 동기를 끌어올리고, 효과적일지 탐구한 책이다. 학생 때 비효율적인, 심지어 이상한 내용으로 수업하는 수능 영어에 대한 불만이 있었는데, 이게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비영어권 나라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던 게 좀 놀라웠고, 분명 작가님이 한국 교육의 사정까지 다 관찰하지 않으셨을 텐데, 내 이야기인가 싶을정도로 공감이 많이 갔고 그래서인지 내가 교육하는 입장이 아님에도 굉장히 흥미롭고 책에 몰입하게 되었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영어 즉, 비관습적인(Unconventional) 방법으로 자기가 흥미가 있어서 영어를 공부했던 학생이 더 영어를 잘하더라고 하는 부분도 공감이 갔다. 결국 자기가 좋아서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많은 사람이 누가 시켜서,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보다 잘하는 모습을 나도 많이 봤다. 내 경우는 좀 거의 항상 영어에 관심이 많아서 시험공부뿐만 아니라, 영어로 된 잡지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영어권 커뮤니티도 가서 대화도 많이 하고, 매일 락메탈 듣고 살고, 영작도 꾸준히 하는 등의 습관이 삶에 녹아있는 편이라 이 두방식(Conventional vs Unconventional)의 극명한 차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비관습적인 방식으로 영어를 사용했던 나로서 이건 말할 수 있겠는데, 그게 고통스러운 방식의 공부였다기보다는 재미있고 얻어가는 게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정보와 기회를 영어로 얻어갈 수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와 같은 정보의 노출로 인하여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실 언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그 문화를 배워가고 받아들이는 것에도 큰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맥락이 이러하기에, 사람들은 "영어를 공부한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그 문화와 정체성을 이해한다는 것보다는 '자기가 더 잘살기 위해 시험공부를 한다, 또 하나의 기술을 연마한다'는 것쯤으로 흔히들 이해되어진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나는 꽤 답답함을 느낀다.

따라서 이런 역학을 이해하여 영어 교육 자체가 뿌리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나 또한 생각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기에는 정치와 경영과 교육계 전반 등과 같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며, 옛날과 같은 스탠다드한 교육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믿는 학부모 또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비효율적인 교육 제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부패했다는 방증이라 생각한다. 한국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교육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아마 다른 나라도 그럴 것이리라 짐작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며 자연스러운 언어 습득 과정과 교육에 대하여 주장하고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이 래디컬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잘못된 것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의 용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정체성의 퇴색: 급변하는 세계 속 나의 위치 찾기

 최근에 내 아이덴티티에 관한 고민을 하게되었다. 특히 나는 뭘 좋아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학교를 나왔고, 결혼 상태는 어떤지 등과는 별개로 설명하기 힘들었던 국가 및 민족정체성이 옅어지는 느낌과 사회적 전반적인 분위기와의 괴리감 같은게 느껴져 이 공허한 느낌을 좀 구체화 시키고 싶었다. 


국가 정체성이나 민족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단순히 그 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으로 나는 어떤 국가 사람이다, 어떤 민족의 정체성을 가졌다라고 말할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건 그 국가적 사상과 분위기에 동조하고 참여하며, 그 민족 구성원과 얼마나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공감하느냐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국가 및 민족 정체성이 옅어졌다 느낀건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한다. 내가 스스로 적극적으로 이 사회를 배격하고 반항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커가면서 한국 사회는 분열되어가고 있으며, 나 역시 이들과 점점 접점이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그의 일원으로서의 나 자신이란 정체성을 떠올릴 때 그의 전통문화와 명절, 의식, 전통 춤, 노래, 음식, 건축, 결혼 풍습 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거의 30년 평생을 살면서 이런 것들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적은 어린시절 10살 정도 까지의 기억밖에 없다. 내가 언제 한복을 입었었나, 언제 전통 춤과 노래를 들었나, 한국 전통 결혼을 내 눈으로 본적은 있나 싶다. 설날 및 추석과같은 대명절에도 내가 학생 시절에는 친척들끼리 모여서 어른들께 세배하고 차례를 지내곤 했었다. 그러나 그 명절의 의미에 깊이 공감했던 적은 있었나? 사실상 한국의 샤머니즘이나 불교와 같은 전통종교적인 색채가 옅어지고 종교와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지며 이러한 의식의 의미가 이미 퇴색되었었다고 본다. 이것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뿐이며 내 부모님 세대 그리고 손자 손녀였던 내 세대는 '그냥 그것이 전통이니까', '위계질서가 있으니까 하라는 대로 해야지', '그래도 명절인데 안하면 서운하다' 식이었다. 

이런 영혼없는 의식과 전통이 대를 꾸준히 이을지도 만무하다. 실제로 대명절인 설날과 추석 명절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제 너무나 편찮으시게 되었고, 이 명절의 다음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는 느낌이다. 이러한 명절의 형식성을 제외한 의미와 철학이 사라졌으니 사람들이 대체로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정성스런 차례상과 제사상을 차리기보다 화장품선물, 홍삼선물 등으로 구색만 갖추기에 바빠보인다. 그나마 한국 음식은 사람들이 꾸준히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한국음식 자체가 손이 많이가다 보니까, 이것도 거의 내 부모님 세대까지만 준비 하고 차려먹는 음식이 되어버렸지, 젊은 세대에서는 한국 음식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없는 한 만드는 방법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은 많아서, 가끔가다 친구들끼리 삼겹살을 먹으러 가는 수준이다. 

건축은 어떠한가? 경복궁과 덕수궁과 같이 굉장히 잘 지어진 한국 궁궐은 잘 보존되어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건축 양식은 현대의 한국 건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현대의 한국 건축은 효율성과 상업성의 극치이다. 모든 것이 네모나고, 실용면적을 늘리기 위해 낭비되는 공간이 없으며, 임대와 상업과 투기를 위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경복궁 덕수궁과 다르게 보존가치가 없는 전통적 서민 건축들은 재개발 되었거나, 땅값이 높지 않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에 있을 뿐이다. 

근대화를 통해 이러한 전통적 가치는 3대에 걸쳐 급속히 퇴색되어 현대의 한국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한국이 되었다고해도 무방하다. 나는 현대의 한국인들은 1년마다 급속히 바뀌어가는 사회 분위기를 생생하게 겪고있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전통적 가치의 급속한 퇴색과 급속한 경제 발전, 그 사이에서 태어난 것은 경쟁이었다. 부모님 세대 까지만해도 한국인, 한민족이라는 민족적 공동체 의식을 외치며 사람들이 연합하여 희생하고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대 세대는 그러한 공동체 의식마저 퇴색되어 서로간의 혐오와 경쟁만 남았고, 장기 침체가 닥치며 이러한 경쟁도 무기력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세태이다. 

공동체적, 민족적 정서가 없어도 개인주의 속에 경기가 잘나간다면 사람들은 황금만능주의와 직업적 성취를 자신의 정체성의 큰 부분으로써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암울한 시기에 나 자신에 대한 어딘지 모를 공허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런 감정적 필요를 느꼈던 시점은 학업에 실패했던 때도 아니고 취업에 실패한 때도 아니고, 독립해서 평범하게 일하고 있었던 때였다. 이런 감정을 느낀 이유에 대하여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부모님도, 친척도, 직장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 형식이며 친구 역시 다들 자기할일 바빠 오래가거나 깊이 있게 사귀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내 과거 속에서도 이런 공동체에 대한 끈끈한 소속감 따윈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과거의 공동체와 관련된 아이덴티티가 희박해도 평생에 걸쳐서 빈공간을 메우고 싶다. 내가 정말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더 깨어있고, 내가 진심으로 소속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부분으로 그 공간을 채워나가고 싶다. 내가 한국에서 커갈 때 부모님과 소통이 안되었던 부분, 내가 속해있는 국가적 분위기에서 공감할 수 없었던 부분을 앞으로 살면서 채워나가고 싶다. 이부분은 나한테 마치 빈서판과 같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이 공부해서 채워 나가야 할 부분이다.

추가로, 전통문화가 와닿지 않는다면, 혹자는 그래도 한국 드라마, 케이팝 문화가 있지 않냐고 할수도 있을 것인데, 이건 마치 미국인이 모두 저스틴 비버를 좋아하고 <바비>를 좋아할거라는 생각과 결을 같이한다. 그래도 영어권은 대안문화나 서브컬쳐가 많아서 자기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더 세부적으로 찾을 수 있지만, 한국은 팝 말고는 대안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취향에 맞춰서 온라인 생활을 많이 했던 것 같다.

AI 서비스 소개 및 정리 (업데이트 유지중)

<<< AI 서비스 소개 및 정리 >>>


※ chatGPT 관련 필수 크롬 플러그인 및 툴 : 


1. AIPRM for ChatGPT (강추) [ https://chrome.google.com/webstore/detail/aiprm-for-chatgpt/ojnbohmppadfgpejeebfnmnknjdlckgj ]

     -> 플러그인 설치 시 최적화된 조건으로 

         검색하게 해줄수있는 버튼이 생성됨(사진참조)


2. AI Content Detector

3. 프롬프트 지니 - ChatGPT 자동번역기

4. ChatGPT for Google - 구글 검색 시 오른쪽에 OpenAI도 같이 답변해줌


※ pdf 요약 크롬 플러그인 : 


1. WordtuneRead [ https://chrome.google.com/webstore/detail/wordtune-read-ai-powered/gnnhhfiajnkfjfnnojggfdlpjifhlmom

    -> 무료

    -> 크롬에 pdf 띄워두고 플러그인 버튼 클릭 시,

        1,2 분정도 기다리면 요약 카드들을 보여줌 (사진 2개 참조)



※ 정규식 써주는 AI :


1. AutoRegex [ https://www.autoregex.xyz/

    -> 제일 정규식을 잘써줌

    -> 무료 버전은 요청 횟수가 제한됨


※ 논문 해석 AI :


1. Explainpaper [ https://www.explainpaper.com/ ]

    -> 논문 pdf를 업로드한 후 모르는 부분을 블록잡으면 우측에 해설이 나옴.


※ 번역기 AI : 


1. DeepL [ https://www.deepl.com/translator

    -> 번역 성능이 좋음

    -> 자주 번역에 사용되지 않는, 예를들어 히브리어 같은 언어는 목록에 미포함


※ 이미지 생성 AI : 


1. Artbreeder [ https://www.artbreeder.com/ ]

    -> 키워드 검열이 상대적으로 덜함

    -> 완전무료. 그러나 고해상도 이미지를 원하거나 

        딜레이 없이 생성하고 시플시에는 구독해야함.

    -> 진짜 사람같은 사람 얼굴을 세부적으로 원하는 스타일에 맞춰서 생성가능.

2. Dalle2 [ https://openai.com/dall-e-2/ ]

    -> OpenAI 에서 만듦. 키워드 검열이 좀 심함.

    -> 월별 기본으로 제공되는 횟수가 제한되어있음.


3. MidJourney [ https://midjourney.com/auth/signin/

    -> 너무 유명한 이미지생성 디스코드채널.

    -> 무료


4. This person does not exist .com [ https://this-person-does-not-exist.com/en ]

-> 실제 사진찍은 것과 같은 사람 얼굴 사진을 GAN 모델을 이용해서 생성해줌.

-> 실제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정도로 퀄리티가 좋음. 무료이용가능. 


5. 노블 AI [ https://novelai.net/ ]

    -> 스토리텔링 기능

    -> 묘사를 바탕으로 그림 뽑아줌. 애니에 최적화.


6. 스테이블 디퓨전 [ https://stablediffusionweb.com/ ]


※ 비디오 생성 AI :


1. D id [ https://studio.d-id.com/ ]

    -> 무료로 테스트 해볼 수 있음.

    -> 얼굴 사진 한장이랑 스크립트 조금만 붙여넣으면 

        거의 원클릭으로 말하는 비디오 생성가능.


※ AI TTS(Text to Speech) : 

-> 대부분이 영어에 집중되어있다는 특징에 주의


1. Synthesys (강추) [ https://synthesys.io/ ]

    -> 유료 구독형 TTS. 구독료가 다른 것에 비해 크게 비싸지는 않음.

    -> 발성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림.


2. play.ht [ https://play.ht/ ]

    -> 구독료는 비싸서 추천하지는 않지만 

        발성이 너무 성우급으로 좋아서 무료테스트 해보는 것을 추천.

3. Natural Reader (추천) [ https://www.naturalreaders.com/ ]

    -> Plus 버전에선 준수한 TTS 서비스를 제공.

    -> 연간구독료가 나쁘지않은 편이라 필자가 구독해서 사용중임.

    -> URL, 텍스트 그리고 물리적인 책도 TTS 가능.


※ AI TTS(Text to Speech) - 한국어 :

  1. Micmonster [ https://micmonster.com/text-to-speech/korean-korea/ ]

    2. Listnr [ https://www.listnr.tech/text-to-speech/korean ]

-> 두 URL 모두 무료 서비스 제공하며, 기존 한국어 TTS처럼 듣기 거슬리지는 않음.


※ 음악생성 AI : 

1. Soundraw [ https://soundraw.io/

    -> 무료버전에서는 음악 생성 가능하지만 다운로드 불가능

    -> 다른 유료구독형 음악 생성 서비스에 비하여 

        저렴한 가격에 고퀄리티의 음악을 생성가능.

    -> 단점으로는 음악 비디오를 만들지는 못하고 

        백그라운드 음악으로밖에 사용하지 못함.

    -> DAW(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 ex 큐베이스)에 준하는 수준으로 음악 편집 가능


2. Aiva [ https://www.aiva.ai/ ]

    -> 무료버전에서는 음악 생성 가능하지만 다운로드 불가능

    -> pro 버전에서는 저작권이 유저한테 있어서 마음껏 사용가능. 

    -> pro 버전에서도 월 300 곡 밖에 생성 못함.

    -> pro 버전 구독료가 비쌈

    -> DAW(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 ex 큐베이스)에 준하는 수준으로 음악 편집 가능

[HAIL SATAN - Satanic Values] 팟캐스트 한국어 번역 스크립트(1/3)

Joseph Rose가 진행하는 <Hail Satan> 팟캐스트 에피소드 중에 <Satanic Values>를 한국어로 번역해보았습니다. 

아래에 원본이 되는 유튜브 영상과 애플 팟캐스트 링크를 삽입해두었습니다. 사타니즘 관련해서는 거의 영어로된 문서밖에 없고 대부분이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기에 사타니즘에 관심이 있으신 한국분들께서 해당 정보를 접하기에 꽤 어려움을 느끼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영어 공부할 겸 한국분들께도 도움이 되고자 해당 번역 스크립트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Greeting Heathens!

<Hail Satan> 팟캐스트를 시작합니다.

이 팟캐스트는 모던 사타니스트의 관점으로 사타니즘, 문화, 일상 전반에 대해 다룹니다. 제 이름은 Joseph Rose고요, 저는 굉장히 멋지고 독립적인 집회인 <Satanic Delco>의 한 멤버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전세계의 어떤 사람들이나 멤버로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Satanic Delco>에 대해서 좀 더 알고싶으시다면 "satanicdelco.com"을 방문해주세요.

저는 이 에피소드를 진행하는데에 좀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지난주에 굉장히 아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진행해보기로 마음먹었고 만약 제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면 청취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저는 "Outsider Satanism"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우선, 최근에 저희 집회에 Patreon으로 후원 및 참여해주신 멋진 사타니스트들을 알립니다: Pow Pow, Roberts, Cris, Plair, Allysico, Oleem, Oliver, JT, Angelica, Collin, Writingfanatic, Justin, Hayley, Lauren, Andrew, Rose. 감사합니다 여러분. 후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여러분 덕분에 이 모든 진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께)시간이 되신다면 "hailsatanpodcast.com"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해당 홈페이지에서 저희의 소셜미디어 계정들을 확인하실 수 있으시고요, 저에게 메일을 보낼 수 있는 폼도 확인하실 수 있으시고요, 그리고 후원하실 수 있는 Patreon 링크도 있습니다. Patreon 후원은 저에게 (팟캐스트를 진행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직접적으로 서포트 해주실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만약 후원해주시고 싶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 "hailsatanpodcast.com" 방문 부탁드려요.

좋습니다.

저는 <Outsider Satanism>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핵심 가치부터 좀 설명하고자 합니다. 

비교를 위해 예시를 들어드리자면, <The Satanic Temple>(TST)은 7가지 교리를 가지고 있고요, 이 교리들은 TST가 말하길 말과 행동의 고귀함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에 영감을 주도록 고안되었다고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특히 액티비스트(활동가) 그룹에 잘 어울립니다. 이 집단에는 7가지 교리를 확장시킬 표준적인 규범같은 것은 없고요, 이건 장점이 될수도 있고 단점이 될수도 있습니다. 

<The Church of Satan>의 경우, 9가지 사탄의 선언이 있고요, 또한 그들은 세상의 11개의 규칙과 9개의 사탄의 죄가 있습니다. 

제가 이 모든걸 다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지만 <the Church of Satan>을 인정하는 점이 있는데요, 그분들이 책과 에세이들을 점점 더 만들어나감에 따라 철학적으로 확장되는 느낌이 있고 좀 더 어떤 분야에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힘을 갖게되었다 생각합니다.

<Outsider Satanism>에 대해 말하자면, 저희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저희의 어떤 계명(Commandments)이라던가 규칙같은 것을 발견하시지는 못하실 뿐더러 분명히 죄악이 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발견 못하실 겁니다. 이런 것들은 양치기를 기다리는 양떼들을 위한 것일 뿐이니까요. 

저희가 말할 각각의 규칙들에는 꽤 짧은 설명들이 동반될 것이고 그 때 각각의 것들은 그에 해당하는 에세이들과 다른 매개체들을 통해 확장되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살아있는 기록으로서 여겨질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고 성장하는동안 이런 가치들 역시 변화하게 될 것이죠. 

저는 이미 <Satanic Delco> 회원들과 함께 생산적인 토의를 진행해왔고 이분들은 저에게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해주셨으며 이런 가치들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존재하는 가치들을 설명해볼까 하는데요, 각각의 요소들에 대해서 말할 때 간단하게 추가적인 설명도 함께할 것입니다. 각각의 가치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에는 다시 돌아가서 해당 가치에 대한 질문들과 좀 더 일반적인 질문에 대해 답변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존재하는"이라고 설명했었는데요, 왜냐면,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살아있는 기록이며 필요 시 분명히 이 가치들은 변할 수 있고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죠. 

[04:27]

자 그럼 시작해봅시다.

현재 이 가치들은 8가지 이고요, 특별히 순서는 없습니다. 여기에 실제로 번호가 붙어져있지는 않아요. 저는 그냥 각각의 가치들을 세는 과정에서 순서를 붙일 것입니다. 

첫번째로는 "비판적 사고와 지식 추구(Critical Thinking and the Pursuit of Knowledge)" 입니다.

비판적 사고는 우리의 끊임 없는 지식 추구를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은 과학적 맥락에 있어서도 사실일 뿐더러 우리의 사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채울 수 없는 호기심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증거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곳에 맹목적 믿음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두번째는 "개인적 자유(Personal Freedom)" 입니다. 

종교적 교리들의 탄생은 많은 사람들의 삶속에 죄의식과 공포에 기반한 금욕적 가치관을 심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대조적으로, 우리는 (긍정적인 문맥에서의)탐닉(indulgence), 자율성, 신체 자율권, 표현의 자유, 섹슈얼리티의 다양성 그리고 진실성을 찬양합니다. 

세번째, "자아를 위한 경의(Celebration of the Self)" 입니다.

당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 자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것은 너무 명백하게 사실이며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의 중요성을 간과합니다. 당신은 비어있는 우물에서 물을 퍼올 수 없습니다. 자기계발 및 자신에 대한 사랑은 당신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기쁨을 최대화하는데에 필요한 일입니다. 

네번째, "정의(Justice)" 입니다.

정의(Justice)란 공평하고 합리적인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개인적 특성입니다. 또한 개인 자신의 윤리적 나침반이 개개인 스스로의 방향성을 제시해줄 것 입니다. 죄가 확정되기 전에 어떤 것에 대해 우리가 그것을 무고하다고 여길 경우 그 뜻에 따라 행동하고 다루어야 합니다.

아웃사이더들은 간혹 근거없는 비난의 피해자가 되곤 합니다. 여기서 저는 후기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의 어록을 인용하고 싶은데요, 히친스 레이저(Hitchens razor)로 알려진 것입니다, 그가 말하길: "근거없는 주장은 근거없이 해체될 수 있다(What can be asserted without evidence can also be dismissed without evidence.)"했습니다. 

다섯번째, "저항(Rebellion)" 입니다.

<창세기>라는 허구적 소설의 초반부에서 뱀의 형태로 나온 등장인물인 사탄은 신의 독재에 맞서 저항했습니다. 여기 실제 삶 속에서 우리의 사탄에 대한 존경심은 자기 멋대로인 권위와 바람직하지 못한 현실에 맞선 저항을 이어나가도록 힘을 실어줍니다. 

여섯번째, "수용(Acceptance)" 입니다.

우리의 삶과 세상을 대하는 관점은 우리가 경험한 것의 독특한 조합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각각의 개인들은 서로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수용하기 위해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습니다. 

일곱번째, "균형(Balance)" 입니다.

바람직하게 이루어진 균형은 당신의 삶의 거의 모든 영역들에 도움이 됩니다. 균형점은 절제와 충동과 같은 두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 놓여지게 됩니다. 우리는 지성적인 의사결정을 위하여 맹목적 충성심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덟번째, "경외감(Wonder)" 입니다.

진정한 마법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 강렬한 오르가즘, 의식을 확장시키는 환각적 체험(Psychedelic Trip)과 같은 것에 의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목표와 의미있는 경험들이 상실될 때 우리의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순간들을 찾으세요.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세요.

 [08:24]

좋습니다.

이것들이 <Outsider Satanism>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사람들이 해당 가치들에 대해서 어떤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저는 사람들에게 "outsidersatanism.com"링크를 공유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질문들 중 일부를 가져와봤습니다. 먼저 저는 좀 더 일반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것이고요, 그 다음에 해당 가치들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와볼까 합니다.

첫번째로 코빈님이 질문해주신 내용입니다.

Q: <Outsider Satanism>에서 제가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요, 아웃사이더 정의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거에요. 정말 사회적으로 아싸이거나 왕따인건지, 반대하거나 적대하는 사람인건지, 아니면 그냥 사타니즘의 한 분류이자 브랜드로서 이름붙인건지 궁금합니다. 제말은요, 이게 아웃사이더라면, 문맥에 따라서나 주관적으로 사람들이 하는말에 따라서나 적용 범위가 너무 넓다는거에요.

A: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코빈님. 

자 제가 그걸 다 다룰 수 있을지 한번 답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맞습니다. 적용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떤 사람을 아웃사이더라고 정의내리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실제로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느끼는지 여부에 달렸다 봅니다. 길에서 지나가는 행인1,2가 어떻게 당신을 바라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인종이 어떻든, 출신이 어디든, 재산이 얼마가 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수만가지의 이유로 당신 자신이 아웃사이더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느낀다면 이런 느낌이 좀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보다 영향을 더 받겠죠. 저에게 있어서 새로운 줄기의 사타니즘을 정의내리는데에 있어서 가장 크게 작용했던 동기는 그저 저에게 딱 맞는다고 느끼는 곳이 없다고 느껴서인데요,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다른 사타니스트들도 저와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는게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the Church of Satan>에서도 아웃사이더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저는 감히 라베이(LaVey)에 대해서 비판적이기 때문이고요. 이쪽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웃사이더를 받아들일만한) 그럴 여유까진 없습니다. 제가 딱히 연관짓고 싶지 않은 많은 어이없고 병맛같은 것들이 따라붙는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그리고 간단히말해서 라베이안 철학에 제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고요! 그리고 물론, 저는 TST(The Satanic Temple)쪽으로부터도 아웃사이더인데요, 제가 감히 이분들에게도 비판적인 입장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TST에 대해 비판적임을 알고있어요. 그리고 저는 TST와 관련해서도 상당부분 동의하지 않고 있고요, 또한 전 TST측에서 부정직하고, 모순적이고, 고의적으로 오도하는 것도 상당부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이쪽에도 비판적인 이유에 대해 꽤 간추리고 문제되지 않을정도로만 표현한 방식이에요. 

<Satanic Delco>의 사람들과의 대화를할 때 저희는 가끔 저희가 아싸의 아싸라고 농담을 치곤 하는데요, 근데 이건 사실이랍니다. 자기 자신과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들을 제외하면, TST가 생기기도 전에나 저희 스스로가 사타니스트라고 정의내리기도 이전에 우리는 이미 이런 저런 면에서 살아가는동안 아웃사이더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했듯이 개인 자신이 아웃사이더라고 느낄만한 수만가지의 각각 다른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질문의 방향과는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Outsider Satanism>이라고 정의내리는 데에 대한 또 다른 동기가 있다면 사타니즘 혹은 사타니스트라는 단어 자체로는 딱히 별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집단에게는 사타니스트가 된다는건 명확히 안톤 라베이(Anton Lavey)의 말을 따라야 함을 의미하며 그렇지 않다면 사타니스트라고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집단에게 있어서 사타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활동가(Activist)그룹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건 지난 50년동안 존재해온 기존의 사타니즘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타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문자그대로 사탄을 숭배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어떤 것이 이와 같이 합의된 정의를 따르지 않는다면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따라서 흙탕물의 물을 더 흐리기보다, <Outsider Satanism>은 다른 그룹과는 구분을 지으면서 고유한 이름을 붙이고 실질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입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코빈님 감사합니다. 

[12:56]

다음은 제시님의 질문입니다.

Q: 이건 기존의 사타니즘을 개선시켜 새로운 철학을 만드는 작업이라 말하셨죠, 제가 잘 모르는 것 양해 부탁드려요 근데 <Outsider Satanism>에서 유기적으로 만들어지는게 뭔가요? 기존에 작업들에서 가져오는 것 보다도요. 이런 질문은 너무 시기상조일까요? 방송 재밌게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시님 감사합니다.

A: 저는 단순히 기존의 정보들을 가져와서 짜집기하려는 계획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거의 모든 철학들이 좀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요, 이 철학의 전제가 기존의 것들을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면요. 그리고 이렇게 기존의 것들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Outsider Satanism>이 전제하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안톤 라베이(Anton LaVey)와 그의 사타닉 바이블(Satanic Bible)을 본다면 그는 명백하게 다양한 기존 정보들을 끌어왔습니다. <힘이 정의다(Might is Right)>(래그나 레드비어드 저), 랜드(Ayn Rand), 존 D(John D) 등이요. 그는 그가 느끼기에 중요하고 그의 느낌에 잘 맞는 부분들만 가져오며 그 외 많은 나머지 부분들은 뒷전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합친 것이 안톤 라베이 것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사타니즘이 만들어졌던 겁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후에 <The Church of Satan> 멤버들은 <The Satanic Temple>을 만들어야겠다는 바램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이미지와 상징과 사상들을 라베이안(LeVey's) 사타니즘에서 가져왔으며, 이 기존의 사상과 휴머니즘 철학, 정치적 액티비즘을 합친 것을 사타니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합친 것이 그들만의 독특한 해석이 되어 전해졌습니다. 

<Outsider Satanism>의 경우, 저는 라베이안, TST와 더불어 휴머니즘과 같이 사타니즘에 영향을 미쳤던 사상들이 저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저 재료들에 불과합니다. 설탕과 밀가루로 케이크를 만들순 없어요, 그렇죠? 그래서 제 생각엔 당신은 절대 다수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실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만들 케이크는 독창적인 고유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시님 감사합니다.

[15:16]

최근에 심즈3로 지은 4층 협소 단독 주택

심즈3는 발매일이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오래된 게임이지만 여전히 재밌는 게임이다. 가장 최신 버전인 심즈4에서 빠져있는 오픈월드 기능이 여전히 남아있는 버전이기도 하다. 심즈4에서는 마을에 유저 임의로 주택부지를 생성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구버전인 심즈3에서는 더 자유로운 마을 편집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지난 주말에 나는 재미로 심즈3에서 4층 협소 단독주택을 지어봤다. 역시 협소주택은 도심에 짓는게 맞다. 협소주택은 생활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도시면서 비싼 땅 값을 고려한 건축 형태이다. 부지를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낮추고 건물 층수를 위로 올려서 생활 면적은 넓게 사용하려는 전략이다. 보통 이런 협소주택은 한국과 일본 위주에서 지어지고 있으며, 땅이 넓은 북미 및 캐나다에서는 흔치 않다. 

그래서 나는 심즈 세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1,2층집 말고 좀 더 독특한 집을 지어보고 싶어서 도시에 작은 부지를 사서 협소주택을 지어보았다. 


내가 지은 협소주택이다.



엄청난 역세권이다. 집 바로 옆에 지하철역이 있다.



야경이다.. 이렇게 보니 주변의 거대한 건물들에 비하여 왜소해보이긴 한다.



전체 맵에서 볼 때 해당 협소주택의 위치다.



1층이다. 1층은 주방으로 만들었다.



1층의 반대편 모습.



2층은 연구실 및 공부실이다. 가족 중 공부를 좋아하는 마법사이자 의사가 있어서 이 층을 공부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콘트라베이스도 갖다두었다. 다른 남자심은 악기를 다루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3층은 화장실이다. 가족 인원이 많아서 화장실을 3칸 두었고 욕실도 두칸 두었다.



4층은 침실이다. 왼쪽은 부부의 방이고 오른쪽은 학생들 방이다. 그 앞에 요람도 두개 두었다.



대각선으로 본 4층의 모습. 심즈3의 시대적 배경이 올드해서 그런지 TV가 레트로한 멋이 있다.



옥상으로 가는 사다리.



옥상에 나와서 망원경을 통해서 별도 관찰할 수 있고, 화초를 가꿀수도 있다. 앞에 야외용 체스테이블도 두어서 체스도 할 수 있음.



왼쪽에 보이는 뼈다귀는 본힐다라는 가사도우미이다. 마법으로 움직이는 존재.



뒷쪽에 벌통을 두어서 꿀을 채취할 수 있음. 참고로 할머니는 요정임.



이 집의 고등학생은 늑대소녀이다. 과제를 매우 어려워하는 모습.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남심과 인형의 집을 가지고 노는 유령 아기.



마법의 약물을 제조중인 마법사이자 의사인 집안의 브레인.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아내는 다트를 즐기는 중이다.

내가 집중을 하는 법

원래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바리스타로서 카페 알바를 해본 것도 아니고 카페에 신상 음료가 나왔을 때 바로 먹어볼정도로 카페 자체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카페 자체에 대한 글쓰기는 그만두었다. 그럼 내가 왜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걸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그 이유를 포함한 내 공부 스타일, 작업 스타일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어졌다. 

내 집중력과 기억력은 괜찮은 편이다. 나는 도서관 같은 조용한 곳에서는 집중을 잘 하지 못하며, 카페와 같은 시끄럽고 탁 트인 곳에서 집중이 잘되는 편이다. 그 이유는 내가 감각적 자극이 많은 곳에서 더 쉽게 어떤 것이나 어떤 생각의 흐름에 집중이 잘되기 때문이며, 반대로 도서관이나 내 집과 같이 감각적 자극이 적은 곳에서는 답답함과 지루함을 쉽게 느껴서 오히려 하나에 집중이 잘 안되는 경험을 한다. 이건 내 수년간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결론이니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용하고 감각적 자극이 없는 곳에서는 적당한 감각적 자극이 없어서 하나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딴짓을 반복하게 되었던 경험이 많다. 그러나 카페같은 외부 장소에서는 매장안의 음악이라던가, 지나다니는 사람들, 떠드는 소리들이 많기 때문에 주의를 적당히 분산시킬 수 있고 오히려 하나에 집중이 아주 잘되는 경험을 한다. 

10대 초반에 나는 집안이나 학교나 도서관같은 곳에 가서 집중을 해보려했고, 선생님과 부모님은 그런 환경을 조성해주시기 위해서 방문을 닫아주시고 시끄럽게 떠드는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는 일을 하셨다. 그러나 그 후 5분 정도가 지나가면 개인적으로 점점 그 공간이 숨막히고 잡생각이 많이나고 집중이 오히려 안되는 경험을 많이 하게되었다. 처음엔 내 의지가 문제인줄 알았으나, 버스 혹은 지하철 안, 교실 복도, 수업 후 쉬는 시간 등의 시간에 오히려 집중이 잘되는 경험을 하게되었다. 10대 중후반 때는 지루함을 달래고자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는 습관이 붙었는데, 고정관념과 달리 그게 나한테는 너무 잘맞는 공부방법이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한창 집중이 잘되고 있는데 이어폰을 빼면 오히려 그 때부터 생각이 멈추는 경험도 하는 편이다. 

나에게 있어서 공부하는데 집중이 잘되는 적절한 수준의 감각적 자극이란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지나다니는 등의 시각적 자극과, 시끄러운 음악이 들리는 곳 혹은 시끄러운 음악을 이어폰을 통해서 듣는 것과 같은 청각적 자극, 그리고 가끔 바람이 불거나 무언가를 먹으면서 하는 등의 후각적 감각도 포함되는 것 같다. 이게 한두시간만 이러다가 다시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서 공부하는게 아니라, 그냥 나는 계속 이런 곳에서 몇시간동안이나 작업을 해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나와 같이 집중을 하는데에 높은 자극수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공부 환경을 찾기 위해서는 가끔 고정관념을 버리고 창의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영화 감상문: 블랙폰

어제 나는 친구랑 <블랙폰>이라는 영화를 봤다. 공포영화지만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무섭기보다는 감동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내 생각엔 영화가 관객을 겁주려하기보단 주인공 남자아이의 성장에 더 초점을 맞춘 것 같기도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영화가 공포스러운 상황과 주인공의 불안감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보다 메인 캐릭터 자체에 너무 초점을 맞췄다고 본다. 내 생각에는, 주인공 소년과 그의 여동생이 보고 듣는 환영 전부 그들의 희망과 계획과 감정 상태를 전달하는 장치로써 사용될 뿐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영화 러닝타임 동안 진행되는 모든 것은 주인공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그 자신의 힘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리고 납치범의 지하실은 주인공의 외로움과 고통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친구들로부터 오는 지하실에서 울리는 전화들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 그와 그의 친구들이 공유했던 정서나 정신을 상징한다고 본다.

이 영화에서는 결코 주인공이 그를 구해줄 영웅을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지 않는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 심지어 공격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그의 삶을 지켜내는 방식으로 반응했고 운명을 향해 맞서 싸웠다. 극중에서 경찰은 그를 직접적으로 구하지 않았으며 주인공을 지켜낸 것은 그 자신의 의지였다. 경찰들은 그저 배경적인 인물들인 조연 역할이나 할뿐이지 직접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는다. 내 생각엔 경찰들은 그저 그의 여동생이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전달할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라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서, 경찰들은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그저 당연히 해야할 일만을 했을뿐이다.

가끔 이야기 속 환상과 판타지는 비유와 상징으로서 은유적으로 현실 자체를 더 진실되게 표현한다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가 주인공 소년이 그의 역경을 극복한 하나의 성장 스토리로써 이야기를 훌륭하고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본다.

내가 심즈4로 지은 건축물들

내가 올해에 심즈4을 이용해 지은 건축물들 3가지를 올려본다. 나는 심즈 게임 시리즈를 매우 좋아한다. 이 게임을 시작한지는 한 10년정도 된 것 같다. 그동안 다양한 게임 플레이를 했지만 가끔은 멋진 건축물도 짓곤 한다. 이 글이 잊혀지고 소실되기 전에, 올해 내가 자주 방문했던 어떤 커뮤니티 사이트의 내 심즈4 건축관련 글들을 스크랩해본다.



무로맨틱 안드로진으로 산다는 것

 어떤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제가 사랑 또는 사랑과 관련된 것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솔직히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필요성을 진지하게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사랑 혹은 그와 관련된 전...